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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소개 > 지명유래

용덕면 신촌마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3013
등록일
2003.08.21
읍면
용덕면
첨부

용덕면 소재지 못미쳐서 덕암골이 있는데 바로 들머리 동네가 신촌이다. 고유지명은 「새말」「새몰」이라 불렀고 한자로는 鳳과 마을(里.村)로 적었던 것인데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정비와 동.리명의 한자화를 강행하면서 쓰기도 쉽잖은데다 뜻도 고상하다보니 의도적으로 改惡한 지명이 됐다. 옛시절에는 동네 옆과 앞쪽에 무성한 솔숯이 장관이었다 한다.

그래서 봉리송파(鳳里松坡:봉황이 깃드는 동네에 소나무 숲언덕)라 하니 얼마나 낭만적이냐 말이다. 긴 숲도 없어졌고 삭막한 환경이고 보니 봉황이 어찌 깃들것인가. 오랜 전통을 가진 동네가 그만 새로 생긴 마을로 변해졌는데 그 사연을 아는이가 있는지 조차 궁금하다. 진양강씨 시조를 모신 봉산사 사우의 이름에서 새(鳳)를 따서 지은 소지명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강씨가 주인인 마을로 알려져 왔다.

부드러운 산줄기가 멀리서 흘러왔는데 이 마을 끝쯤에서 멈춰선 지형이고 집들은 얼추 다 서향으로 앉은 셈이다. 옛시절 큰 서재가 있었다고 「서재골」. 앞산에 있는「매산이굴」「부엉이굴」은 안가태평에 자손들 명길라고 치성을 드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밭들 나들이 고개는 「바태꼬(밭고개)」였고 의령장 보러 넘나들던 잿길은「장고개」라 불렀다.

전설적인 「배곡재」는 인제 큰길 국도가 돼버렸으며 동네앞 논들에 박혀있던 칠성바구(칠성바위)로 부르는 것들은 대개 선사유적인 고인돌로 흔적없이 묻히고 깨져 버렸다. 개발독재시절 문화유적은 무참히 파괴되었고 전통민속등「우리것」마저 마구 없애 버렸으니 지금에사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들을 건너 앞산 고리부분을 「나발바구」(나팔모양의 산줄기라서)도 길 때문에 이리저리 다 뜯겨나가고 작은 섬처럼 남아 있다. 10여년 전만해도 그곳에 몇집 살았다. 옹기장사아 거지등이 살았는데 지금은 집터만 남았고 옆에 「호쟈밀양박공성권행적비」한개가 슬쓸히 서있다.

배곡재 먼당에는 꽃집이며 돌비가 여럿있지만 새망구역에는 「효자김해김공주찬지비」가 서있다. 지금으로부터 1백50여년전만 해도 서재골에는 고반정이란 서재가 있었다고 한다. 상례집요란 책을 남기신 우계 강윤 선생이 지키던 곳이다. 의춘고을의 은덕군자로 불리었던 큰선비였다고 한다.

대를 이으면서 비운 마음에 바른 행실 게다가 충효심이 남달랐던 후손분들이 끊이지 않았다니 자랑할만하다. 유서깊은 고반정, 동네지킴이었던 칠성바구, 인상적인 솔나무숲등 이젠 옛 얘기가 돼 버렸다. 다만 마을 어귀 정자나무 밑 축대에는 「봉리송파」새긴 큰돌이 박혀있어서 옛시절 마을의 내력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강씨가 12집, 담양전씨가 여남은집, 김.이.홍.정.남.성씨등은 모두 한 두 집씩이라 이곳 역시 강씨촌인 셈이다. 그리고 동구밖에 절부 유인포산곽씨 행적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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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 용덕면 총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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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01-18